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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도시

신세대 여성작가가 쓴 소설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나도 이제 중년이라서 그럴까? 그도 아니면 내가 오랫동안 글 읽기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탓이었을까?

정이현의 소설은 기존 소설에선 익히 볼 수 없었던 톡 톡 튀는 듯 가볍다가도 어느 새 내밀한 삶의 진저리에 닿아 있는 흡입력 있는 문장들이 넘쳐 난다. 강렬하고 감각적인, 그래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은 행간에 묻어나는 삶에 대한 솔직한 발언들과 어울려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소설의 주인공 ‘오은수’는 마치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고 발랄한 친구처럼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소설은 직장생활 7년차를 건너온 서른한 살의 ‘오은수’를 중심으로 15년 우정을 과시하는 단짝 유희와 재인, 그리고 다정한 7살 연하남 태오, 무색무취하면서도 비밀스런 영수, 오랜 시간 친구에서 이성으로 다가서는 유준 등으로 등장인물로 나타나, 그들의 일과 연애, 친구와 가족, 그리고 결혼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들이 속도감 있는 얼개로 엮여져 있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울고 웃고 절망하고 기뻐하고 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들, 그러다 그림자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는 어쩌면 거대한 그림자 그 자체인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 그림자 도시 귀퉁이에 빛없이 숨어사는 한 뼘 그림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처럼 이 소설에는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오은수’는 생각한다. “나는 차라리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 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껴나 있는 커다란 아니, 자발적 미성년.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작가 정이현


이 단단한 제도의 틈 사이를 자유롭게 흘러 다니면서, 그러다 다른 물고기나 산호초와 문득 문이 마주치면, 생긋 한번 웃어주고는 이내 제 길을 가는 거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고, 어디에도 미련두지 않고! 물론 그런 삶이 행복할지는 미지수다.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소통을 원하고 누군가와 안정적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내 안의 질긴 열망은 또 어쩌고?” 이러한 은수의 생각은 이 시대의 미혼녀들의 보편적인 정서일지도 모르다.

작가는 말한다. “등은 연기하지 않는다. 타인의 등을 본다는 행위는 눈을 마주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 내면의 더욱 깊은 곳을 훔쳐보는 순간이다. 이 순간, 나는 이 남자의 무엇을 훔쳐볼 수 있을까?”

그리고 신세대 미혼여성 작가답게 “애인을 뜻하는 '남자친구'와, 성별이 남자일 뿐인 '그냥친구'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 스킨십의 유무에 의해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친구와는 키스를 하는 사이이고, 성별이 남자인 친구와는 그 키스에 대해 품평을 하는 사이인 것이다.”라는 등등의 재치 있는 문장들도 빠트리지 않아 소설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문학은 곧 독자와의 소통에서 그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한다.”던 작가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2005년 10월부터 2006년 4월 말까지 총 129회로 조선일보에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