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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 엘라의 계곡

 

사실 이 영화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영화였는데 감독의 이름도 좀 들어본데다가 출연진들이 매우 화려하다..

게다가 요즘 극장가에서 이슈가 되고 잇는 영화 브라더스(아직 보지는 못했지만)와 비교도 해 볼겸 보게 되었는데..


음~ 이 영화 정말 어렵다. 사실 지금도 내가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내놓으라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일단 접어 두더라도 감독의 의도를 알아내기에는 내 머리가 너무 나쁜것 같다. 

왜 제목이 엘라의 계곡인지도..미국 성조기를 마지막에 왜 거꾸로 걸었는지도 난 잘 모르겠다. 해서 이 영화에 대해 검색해 본 결과 모 블로그에서 쓴 글이 매우 가슴에 와닿아 일부를 인용해 본다.


영화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돌아와 살해된 참전병사 '리처드 데이비드'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우연히 플레이보이지에서 기사를 읽은 '폴'은 각본의 대가답게 즉시 영화화를 결심하였고, 이렇게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엘라의 계곡>이다..


<엘라의 계곡>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맹목적인 애국심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그리고 이라크로 파병된 젊은이들의 영혼은 또 어떻게 파괴되었는지에 대하여 꽤나 진중하게 고찰한다..


감독은 성경에 나와있는 <엘라의 계곡>을 차용하는데, '엘라'는 다름아닌, 이스라엘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긴 곳이다. 흔히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을 떨친 까닭이며, 정의와 용기의 상징인 것처럼 들려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그 안에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간과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다윗이 영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골리앗에게 희생되었는지를 반문하는 것이다. 결국, '엘라의 계곡 = 이라크'를 치환하면 감독이 의도는 좀 더 명확해진다..

누가 미국의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받은 상처와 영혼의 파괴는 과연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묻는 것이다...


여기에는 맹목적인 애국심을 바탕으로 자식을 전쟁터로 보낸 아버지 '행크'(토미 리 존스)가 있고, 귀찮다는 이유 하나로 실종 신고를 군부대로 떠밀려고 한 '샌더슨'(샤를리즈 테론)이 있다. 그리고 구국의 명분아래 사병들의 범죄를 방관, 은닉하려는 군관계자들이있다..


따라서 <엘라의 계곡>은 굳이 전쟁을 일으킨 부시 정권 뿐 아니라, 보복을 이유로 '이라크 침공'을 묵인한 전 미국인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전쟁은 어떤 정당성을 갖다 붙이더라도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범죄에 속한다.. 왜냐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와 그 무기를 사용하는 인간의 생명을 도구 삼아 상대방의 생명을 유린함으로써 굴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 발발되면 아무리 '수단의 야만성'을 제한하더라도 '체계적 살인'이라는 속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여기에 전쟁의 끔찍함이 숨어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실종되고, 오로지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의 생존이 보장되는 살인기계로 변모하고 만다... <엘라의 계곡>도 이 지점을 주목한다..

어떻게 미국 청년들이 살인수행의 부품으로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공황은 무엇인지 조목조목 따져든다...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자국의 젊은이들을 서슴치않고 죽음의 골짜기인 엘라로 밀어넣는 아메리카의 작태야말로 병들고, 썩어들어가는 반증이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전쟁을 겪은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을 앓는 미국 젊은이들에게서 쉽게 목격된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자신을 관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숱하게 자행되는 잔혹행위,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비행-헤로인 중독, 성의 남용, 폭력-으로 인한 죄책감, 여기에 자신들을 전쟁터로 보낸 국가, 사회에 대한 배신감이 겹쳐지면서 분별없이 치솟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적의를 드러내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자신들의 군사력을 무기삼아 지구촌 곳곳에서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미국은 이제 표류 중이다..
그래서 그럴까? 마지막 장면, 국기를 거꾸로 걸어놓던(국제조난신호) 토미 리 존스의 표정이 결언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하여 자신과는 무관한 양, 그저 먼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불감증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라고 이 현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이라크 파병 당사국이고, 이라크 파병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평화와 비폭력'이라는 화두를 '비현실적인 이해'라고 몰아붙일만큼 '전쟁을 옹호하는 관념'들이 굳건하다.. 파병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라크 재건' 때문에 군대를 이라크에 보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일부 언론도 이라크 재건사업에 뛰어들어야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이론을 들먹이며 국민들의 전쟁인식을 마비시키는데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 전쟁을 정확히 바라보아야 할 것은 '심리적 상처'와 '정신의 황폐함'이다.
폭격의 직접적인 피해를 겪는 이라크 국민들의 고통이야 말할 것도 없고, 거꾸로 지금 미국의 국민들은 이러한 폭격을 통해 자신들이 지닌 감정에 대해서도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가질 경향이 높다.

즉 자신들의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의 감정에는 냉담해지는 정신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 전쟁과 폭격으로 인해 이라크 사람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폭격과 전쟁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려야 사라질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정신적, 심리적 외상이 아마 다음 세대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쳐 '왜곡된 감정'을 계승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쟁과 폭력에 질문을 던지고 지속적인 물음을 해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풍요와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생존과 경쟁을 배우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에 대하여 '무기력'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전쟁이 가져다주는 깊은 상실감을 직시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올바른 시선을 길러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주는 '심리적 상처'를 성찰하고 '타인의 슬픔을 감싸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더 이상 평화는 없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평화는 이제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본정보

장르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 120 분 | 개봉 2009.12.10 

감독 폴 해기스 

출연 토미 리 존스(행크 디어필드), 샤를리즈 테론(에밀리 샌더스) 국내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