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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잘 생긴 하인, 못 생긴 양반, 춘향의 이중생활

 
  3일 개봉한 영화 '방자전'에서 잘 생긴 하인 방자로 등장하는 김주혁(왼쪽)과 못 생긴 양반 몽룡 역을 맡은 류승범.
시대와 계급을 막론하고 언제나 성과 사랑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근엄하게 여겨져온 고전문학 역시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을 다룬 것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선조들은 이를 통칭해 '남녀상열지사'라 불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멜로물에 천착해온 김대우 감독이 또 하나의 남녀상열지사를 내놨다. 3일 극장가에 내걸린 '방자전'이다.

'방자전'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이야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판소리 문학 '춘향전'이다. 정의로운 이몽룡과 정절의 상징 성춘향, 그리고 몽룡의 충직한 하인 방자와 춘향의 분신 향단을 다루는 원본의 전개와 달리 '방자전'은 거의 모든 이야기 구성을 비틀어 놓고 있다.

먼저 주인공의 성격과 인물이 모두 뒤집어져 있다. 방자(김주혁 분)는 충직한 인물이 아니고 오히려 천한 신분에 따른 콤플렉스를 가진 잘 생기고 건장한 남자다. 몽룡(류승범 분)은 정의롭거나 춘향에게 정성을 다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저 예쁜 관기의 딸을 탐하는 지체높고 못생긴 양반으로 매력적인 방자를 시샘한다.

춘향(조여정 분)은 출세할 만한 양반에게 접근해 하룻밤을 보낸 뒤, 이를 빌미로 결혼해 팔자를 고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결혼은 좋은 조건으로 선택하고 연애는 멋진 남자와 하려는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다. 향단(류현경 분)은 춘향의 모략을 돕는 인물인데 자신의 실리적 이익을 위해 사는 욕망에 충실한 주체적인 인물이다.

 
  영화 '방자전'에서 예쁜 여자를 밝히는 양반으로 열연하고 있는 류승범(가운데).
또 하나 눈여겨볼만한 인상깊은 조연은 변학도(송새벽 분)로 김대우 감독이 창작해낸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참신한 캐릭터다. 변학도는 국가의 안위나 개인의 영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단지 더 많은 여성들과 놀아나기 위해 현감이 될 수 있는 공무원 시험(과거)을 준비해 온 순진담백한 고시생이다. 영화는 몽룡의 계략에 속은 학도가 춘향을 메저키스트로로 착각해 결코 나쁜 의도 없이 춘향을 괴롭히는 것으로 그린다.

'방자전'은 춘향전 이야기 전개도 한바탕 비틀어 놓고 있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뒤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음모와 모략으로 점철된 조선시대의 상황 때문에 비극적이고 개탄스러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몄을 뿐이라는 설정이다. 몽룡의 직업인 암행어사는 겉으로는 탐관오리의 부정을 감시하는 게 일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떠도는 미담을 임금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르포기자이고, 임금에게 인정받기 위해 통속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고 극적으로 만들낸다는 식이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의 2006년 전작 '음란서생'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왕비를 사이에 둔 군신 간의 예를 비튼 것이 음란서생이라면, 방자전은 춘향을 사이에 둔 반상 간의 예를 비틀었다. 조선말기 계급사회 위엄이 약화되면서 유교를 근간으로 한 근엄한 사회상은 허물어지고, 이 틈에서 성으로 상징되는 개인의 욕망이 대두하게 됐다는 공통적인 배경은 김 감독의 연작에서 일관된다.

김 감독은 데뷔 전까지 2003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비롯, '정사', '반칙왕' 등 신분이나 처지 때문에 억압당한 욕망 문제를 다룬 시나리오를 써왔다. 세상의 제도와 규칙으로부터 일탈하는 개인의 모습을 진지하게 다루는 한편, 재치 넘치는 유머를 통해 제도와 편견 등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게 그의 특징이다.

김 감독은 '방자전' 제작보고회에서 "항상 춘향전을 보면서 몽룡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그 시간 동안 방자와 향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늘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물들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혀서 긴장감이 더해진다는 점이 방자전의 매력"이라면서 "영화에서는 악과 악이 서로 부딪히다가 점차 진심과 선함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방자전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