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개봉한 영화 '방자전'에서 잘 생긴 하인 방자로 등장하는 김주혁(왼쪽)과 못 생긴 양반 몽룡 역을 맡은 류승범. | |
'방자전'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이야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판소리 문학 '춘향전'이다. 정의로운 이몽룡과 정절의 상징 성춘향, 그리고 몽룡의 충직한 하인 방자와 춘향의 분신 향단을 다루는 원본의 전개와 달리 '방자전'은 거의 모든 이야기 구성을 비틀어 놓고 있다.
먼저 주인공의 성격과 인물이 모두 뒤집어져 있다. 방자(김주혁 분)는 충직한 인물이 아니고 오히려 천한 신분에 따른 콤플렉스를 가진 잘 생기고 건장한 남자다. 몽룡(류승범 분)은 정의롭거나 춘향에게 정성을 다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저 예쁜 관기의 딸을 탐하는 지체높고 못생긴 양반으로 매력적인 방자를 시샘한다.
춘향(조여정 분)은 출세할 만한 양반에게 접근해 하룻밤을 보낸 뒤, 이를 빌미로 결혼해 팔자를 고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결혼은 좋은 조건으로 선택하고 연애는 멋진 남자와 하려는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다. 향단(류현경 분)은 춘향의 모략을 돕는 인물인데 자신의 실리적 이익을 위해 사는 욕망에 충실한 주체적인 인물이다.
영화 '방자전'에서 예쁜 여자를 밝히는 양반으로 열연하고 있는 류승범(가운데). | |
'방자전'은 춘향전 이야기 전개도 한바탕 비틀어 놓고 있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뒤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음모와 모략으로 점철된 조선시대의 상황 때문에 비극적이고 개탄스러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몄을 뿐이라는 설정이다. 몽룡의 직업인 암행어사는 겉으로는 탐관오리의 부정을 감시하는 게 일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떠도는 미담을 임금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르포기자이고, 임금에게 인정받기 위해 통속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고 극적으로 만들낸다는 식이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의 2006년 전작 '음란서생'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왕비를 사이에 둔 군신 간의 예를 비튼 것이 음란서생이라면, 방자전은 춘향을 사이에 둔 반상 간의 예를 비틀었다. 조선말기 계급사회 위엄이 약화되면서 유교를 근간으로 한 근엄한 사회상은 허물어지고, 이 틈에서 성으로 상징되는 개인의 욕망이 대두하게 됐다는 공통적인 배경은 김 감독의 연작에서 일관된다.
김 감독은 데뷔 전까지 2003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비롯, '정사', '반칙왕' 등 신분이나 처지 때문에 억압당한 욕망 문제를 다룬 시나리오를 써왔다. 세상의 제도와 규칙으로부터 일탈하는 개인의 모습을 진지하게 다루는 한편, 재치 넘치는 유머를 통해 제도와 편견 등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게 그의 특징이다.
김 감독은 '방자전' 제작보고회에서 "항상 춘향전을 보면서 몽룡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그 시간 동안 방자와 향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늘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물들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혀서 긴장감이 더해진다는 점이 방자전의 매력"이라면서 "영화에서는 악과 악이 서로 부딪히다가 점차 진심과 선함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방자전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