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소리

송광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광사하면, 제일 먼저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라는 사실이 떠 오릅니다. 송광사는 신라 말기 혜린(慧璘) 선사가 창건한 이래, 1200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대찰로 중건하고,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힙니다.

그러나, 송광사는 아픈 역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에 놓이는가 하면, 1842년(헌종 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집니다. 이 때, 다행히도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은 보존하게 됩니다. 또한,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의 참화는 송광사도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사찰의 중심부가 불타는 아픔을 겪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의 승보종찰로서의 오늘날의 송광사는 승려 취봉(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고,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완성되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廣遠庵)·천자암(天子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불일암(佛日庵)·판와암(板瓦庵)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 및 탑전(塔殿:寂光殿) 등이 있고, 56개의 말사와 수련원·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광사는 또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도 유명합니다.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보물 90),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보물 207), 하사당(下舍堂:보물 263), 약사전(藥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흥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광사지에 전해져 내려오는 혜린선사의 길상사(송광사의 옛이름) 창건설화는 자못 흥미롭습니다. 송광사 경내의 풍경들을 감상하시면서, 찬찬히 읽어 보십시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름 안거를 마치고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만해길에 오른 혜린 선사는 험한 산중에서 하룻밤 노숙하게 됐다. 『스님,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일이냐?』 『나라 안에 번지고 있는 괴질이 이 산중까지 옮겨졌는지 일행 중 두 스님의 몸이 불덩이 같사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약초를 찾아볼 것이니 너무 상심치 말고 기도하며 잘 간병토록 해라.』 이튿날, 혜린선사는 약초를 뜯어 응급처치를 취했으나 효험은 커녕 환자가 하나 둘 더 늘어나 털썩털썩 풀섶에 주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두들 내 말을 명심해서 듣거라.』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질병임을 느낀 혜린 스님은 엄숙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서원한 출가 사문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무릇 출가 사문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극기력이 있어야 하거늘 이만한 병고쯤 감당치 못하고서야 어찌 훗날 중생을 제도 하겠느냐. 오늘부터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정진에 들 것이니 전원이 한마음으로 기도토록 해라. 필시 부처님의 가피가 있을 것이니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도로써 병마를 이겨햐 한다고 생각한 혜린선사는 기도처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아니 이럴 수가….』 스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바로 가까운 곳에 연잎이 무성한 연못이 있는가 하면 못 가운데 문수보살 석상이 우뚝 서 계시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뜻밖의 발견에 스님은 기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수보살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구나.』 문수보살을 향해 정좌한 일행은 기도헤 들어갔다. 7일 기도를 마치던 날 밤. 『이제 모든 시련이 다 끝났으니 안심해라. 그리고 이 길로 새 절터를 찾아 절을 세우고 중생 구제의 서원을 실천토록 해라.』 비몽사몽간에 부처님을 친견한 혜린선사는 감격 또 감격하여 절을 하다 눈을 떠보니 부처님은 간 곳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 혜린 스님은 또 놀랐다. 『스님! 저희 모두 질병이 완쾌되었습니다. 스님의 기도가 극진하여 부처님의 영험이 있으셨나 봅니다.』 다 죽어가던 제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환호하는 광경을 본 혜린대사는 다시 눈을 감고 앞에 의연히 서 계신 문수보살님께 감사했다. 『저희들을 사경에서 구해주신 문수보살님,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보살님의 거룩하신 자비심으로 저희들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뜬 혜린 스님은 마치 꿈을 꾸는 듯 어안이벙벙했다. 언제 오셨는지 노스님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스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아니면 문수보살 석상이 생불(生佛)』로 화현하셨나? 혜란 스님은 못 가운데로 눈을 돌렸다. 분명 그곳엔 문수보살님이 서 계셨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스님은 정중히 합장 배례한 뒤 노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스님이신지요?』 『소승은 석가 세존께서 스님에게 전하라는 귀중한 선물을 가지고 왔으니 너무 놀라지 마시오.』 노스님은 붉은 가사 한 벌과 향내음 그윽한 발우, 그리고 세존 진골의 일부분인 불사리를 건네주었다. 혜린대사는 감격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불보를 감히 소승이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양 말고 수지하십시오. 그리고 대사! 소승이 전하는 말을 꼭 명심하여 실천토록 하시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제자들을 데라고 전라도 남쪽 땅으로 가시오. 그곳에 가면 송광산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이 불보를 모시고 불법을 전할 성지입니다. 이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니 대사께서 어서 가서 절을 세우고 중생교화의 원력을 실천하시오. 그것만이 부처님의 가피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노승을 통해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혜린대사는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며 삼배를 올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절을 마치고 보니 노스님은 간 곳이 없었다. 혜린대사 일행은 전라도로 발길을 옮겼다. 여러 날이 지나 지금의 승주군 송광면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일행은 백발이 성성한 촌로를 만났다. 노인은 반색을 하며 정중하게 합장 배례를 한 후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일로 이 마을에 오셨는지요?』 『예, 송광산이 영산이라기에 절을 세우려고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장차 이 산에서 18공이 출현, 불법을 널리 홍포할 것이라 하여 18공을 의미하는 「송」자에 불법을 널리 편다는 「광」자를 더하여 「송광산」이라 불렀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이 산에서 성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때였다. 송광산 기슭에 오색 무지개 같은 영롱한 서기가 피어올랐다. 『오! 저기로구나.』 맑은 계곡울 따라 서기가 피어오른 곳으로 향하던 혜린선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석장을 꽂았다. 그날부터 절 짓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잡초를 거두고 터를 닦으니 고을에서 뿐 아니라 먼 곳이서까지 사람들이 구금처럼 몰려와 속히 성인이 출현하길 기원하면서 불사에 동참했다. 절이 완성되어 진골 불사리를 모시던 날 밤. 절 안에서 교룡이 나는 듯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선사는 절 이름을 길상사라 칭하니 이 절이 바로 16국사를 배출하고 선풍을 진작시킨 조계총림 송광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광사 입구에 있는 하마비입니다. 성역이란 뜻이겠지요. 요즈음은 다 차에서 내려 올라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