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한줄기 물기를 담은 소설 개밥바라기별(황석영)
황석영은 어제의 작가가 아니다. 현재도 책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현역이다. 그의 최근 소설 개밥바라기별은 베스트셀러 1위에도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의 TV등장을 두고 난 크게 괘념치 않는다. 오히려 더욱 그다운 발상이란 생각도 든다.
그는 최근의 작가들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소설가 김훈씨가 아직도 손글씨로 원고를 쓰는것에 대해) 통쾌하게 한마디 한다. “게을러서”
오랜만에 TN에 나온 그를 보고는 개밥바라기별을 포스팅 해 본다.
“사람은 씨팔...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 - 257p- 라는 부분에서 강호동이 한마디 한다. 왜 씨팔을 붙이는지... 그래야 감칠맛이 난다는
미국에서 주유하는 종업원이 얼마나 멋진 차였으면 fuck Nice car! 라고 햇단다.(물론 앞부분은 내가 생각해서.. 욕이라 방송에서는 XX표시만...쩝)
그래야 정말 좋은 차라는 뉘앙스가 풍겨진다나 뭐...
듣고보니 정말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풋..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때 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1p-
황석영의 이 소설은 6개월 가까이 네이버에 연재되었고, 독자들과 부대끼고 놀며 때론 정담을, 때론 치열한 토론을 해왔다고 한다.
문득 지난 달 13일 첫 전파를 탄 대통령의 mb라디오방송이 생각난다. 양방향 인터넷 시대에 어떻게 라디오라는 단방향 음성매체로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을 것인지 의문 스럽기만 하다. 이러고도 과연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것인지 .. 비단 정부만 소통의 부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것두 의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소통의 부재는 얼마든지 있다... 일방적인 통고로 이별을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미아와 준이도 소통의 부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속으로는 사랑하지만 애둘러 표현하기에 또는 못내 그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한발 비켜서서 딴청을 부리는 지도...
황석영은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주인공 준이 겪는 길고 긴 방황은 실제 작가 자신의 청춘의 기록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간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를 헤집어 그 시절과 다시 대면한다. 고등학교 자퇴, 방랑, 일용직 노동자와 선원으로서의 생활, 입산, 베트남전 참전, 방북, 망명, 투옥에 이르는 황석영의 실제 행보는 한 개인사로는 버거운 불행이었을지 모르지만 독자인 우리에게는 어쩌면 행운이지 않을 까싶다.
60대의 거장이 십대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그를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다. 정말 멋진 소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그의 원고를 정리하는 동안에 준이를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준이는 현재의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잇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며 그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겪었던 모든 일들과 읽었던 책들, 그리고 어정쩡하게 진학한 대학에서도 벗어 나고 싶어했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의 속에는 나하고는 다른 의미의 아름다운 년이 있었다. 내가 그와 만날 때 마다 혹시 나는 부차적인 존재가 아닌가 끊임없이 조바심치던 연유가 따로 있었다. 나는 섭섭했지만 그가 저 글에서처럼 평화로워질때 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치만 그의 허기가 쉽사리 가라앉을까? 언제쯤...... 준이와 만나는 한 마음고생은 일상이 될 것이다.」 미아의 글 중에서
나는 과연 그의 표현에서 처럼 그에게 간이 맞는 상대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프로필
1943년 1월 4일 만주 신경(新京)에서 출생하고, 8·15광복 후 귀국,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복고등학교 재학 시에 《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입선하였으나 문단에 복귀하기는 1970년에 《탑(塔)》이 조선일보에 당선되면서였다. 초기의 작품에서는 탐미주의적 경향을 보였는데, 이런 면에서 그는 문장이 유려하고 기술적으로 우수하다는 것 외에 동세대의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참모습이 드러난 것은 《창작과 비평》에 중편 《객지(客地)》(1971)가 발표되면서부터이다. 《객지》에 와서 비로소 탐미주의적 예술지상주의 경향이 청산 극복되고, 굳건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민중적(民衆的) 차원에서의 현실 파악이라는 입장이 그에 대신하게 되었다.
특히 그가 즐겨 다루는 노동과 생산의 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 따위가 한국문학에서는 거의 낯선 것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주목된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여러 작품을 통하여 구현시켰는데, 구체적 성과물로서 《아우를 위하여》(1972)를 시작으로 해서, 《한씨연대기(韓氏年代記)》(1972)는 심화 과정에서의 역사에 대한 통찰과 고발이며, 《삼포 가는 길》(1973)은 이에 얽힌 훈훈한 인정의 확인으로 대표되는 작품이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줄자》(1971), 《적수(敵手)》(1972), 《낙타눈깔》(1972), 《노을의 빛》(1973), 《돼지의 꿈》(1973), 《장사의 꿈》(1974),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1975), 《산국(山菊)》(1975), 《난장》(1977), 《가객》(1978), 《장산곶매》(1979), 《어둠의 자식들》(1980), 《장길산》(1984) 등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