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21. 16:31
나는 조선시대의 인조 임금이 어떤 임금인지 잘 모른다. 그는 1636년 겨울 청의 진격을 피해 남한산성에 들었다.

그리고 그는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남한 산성 안에 있게 된다. 작가 김훈[각주:1]『남한산성』[각주:2]을 읽어보면 그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다.

소설은 청의 누루하치에 의하여 남한산성에 감금된 47일 동안의 병자호란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그렸다.

『남한산성』은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주장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를 중심 얼개로 한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은 죽음을 선택하지도 삶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선택은 청의 누루하치에 의해 선택되어졌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었다.

반면, 대장장이로 등장하는 서날쇠와 민초들은 삶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선택한다. 작가 또한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17세기 조선의 모습이었다.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 『남한산성』중에서
  1. 작가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정외과 입학(1966년) 및 중퇴,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현재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칼의 노래』(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문학기행』『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등이 있다. [본문으로]
  2.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4. 16. 384P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