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어린장미 2010. 6. 10. 09:47
TV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이 나온다. 채널을 돌렸다. 마찬가지다. 또 다른 채널에서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믿을 수 없었다. 믿지 않았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절대 믿기지 않는, 따지고 보면 나와 특별한 관계도 아닌, 그런 사람의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랐던 죽음이다. 한명숙 전 총리의 울분, 김대중 대통령의 오열.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청과 서울역을 지나고도 한참, 그리고 전국 곳곳에 노란 물결이 일었다. 1년 전 이맘 때 쯤 이다.

비록 다른 사람이 원고를 정리하기는 했지만,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기록한 ‘정본 자서전’입니다.          
                                                                                                                        - 문재인, 책중에서 -

노무현재단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내놓은 ‘정본 자서전’이란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후, 그에 대한 책들이 숱하게 나왔지만 나는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 그런 목적으로 나온 책은 없길 바라지만, 왠지 읽고 싶지가 않았다. ‘편승’ 혹은 ‘기회’라는 생각이 이유다. 또, 언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책 출간을 자제해달라고 말한 것을 듣기도 했다.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은 자신의 삶에 관한 자필기록과 구술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생전에 기록해 둔 것입니다. 이 기록들을 시간과 사건에 따라 재구성, 압축하면서 '재집필‘(rewrite)했습니다.
                                                                                                                          -유시민, 책중에

유시민 전 장관이 1인칭으로 책 전체를 ‘정리’했다. 스스로 겪은 일이 아닌 일을, 스스로 겪었던 일인 것처럼 서술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디까지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기록한 것이고, 어느 부분이 ‘정리’한 사람의 판단이 들어갔을지, 나는 모른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간간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관심을 끊고 잊고자 했던 무리들에 대한 감정도 꿈틀댔다. 알량한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교묘한 술수를 부리는 그들이 참 싫고, 그것을 옳은 것이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그들이 불쌍하다. 늘 그들의 반대편에서 원칙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수가 없었다. …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 책중에서 -

여기까지가 책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인간 노무현에 대해, 변호사 노무현에 대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대통령 노무현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는 바가 별로 없는 이유는 알고 싶은 동기가 미약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그에 대해 듣기는 했으나, 그런 정보를 생산한 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겪었던 시대 상황과 내가 살아온 시간도 많이 다르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내가 누렸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이제는 비교대상이 생겨서 그런지, 그가 참 훌륭한 대통령이었다는 주관적 판단을 한다.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서는 안된다. 실패는 뼈 아픈 고통을 준다. 회복할 수 없는 실패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나는 이 고통이 다른 누군가에게 약이 되기를 바란다. - 서문에서 노무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