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구찌터널
어린장미
2008. 4. 28. 09:27
아마도 사람들은 호찌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아가씨와 손님을 기다리는 시클로 운전사 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물결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그들을 생각하면, 호 아저씨를 떠올릴 것이다. 그의 삶은 많은 부분 비밀에 쌓여 있고, 그의 투쟁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한 그의 정신이 대표적인 발현된 곳이 아마도 꾸찌 터널일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꾸찌라는 고유명사 자체가 신성시 된다. 호치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호찌민에서 40㎞쯤 떨어진 꾸찌라는 곳에는 땅굴을 파서 만든 지하 요새인 꾸찌 터널이 자리잡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남부 공산군(일명 베트콩)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이 땅굴은 이제는 호찌민 근교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되 버렸다. 1
땅굴에는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식당, 숙소, 회의실, 산소호흡실 등이 있는데 항상 2개의 연대 병력이 이 땅굴 속에 머물며 게릴라전을 펼쳤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땅굴의 주요 시설물을 둘러볼 수 있으며 땅굴 근처 미니 사격장에서는 진짜 총으로 직접 사격도 해볼 수 있다.
베트남 전에 쓰였던 지레같은 것. 무시무시한 지레들도 많았다. 미군들이 꽤나 고생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인들은 체구가 비교적 작아 저 좁은 구멍으로 들어가 땅 밑으로 두더지처럼 다녔다고 한다. 반면, 미군들은 체구 때문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무기 제작소다. 저 곳에서 지레 등이 만들어진다.
꾸찌터널 입구에는 탐스러운 과일이 달렸다. 평화로운 전경인데, 베트남전의 격전지였다는 사실이 잘 믿으지지 않았다.
- 5만8000명에 가까운 미군과 500만 명의 베트남인의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와 대외정책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들은 미국인의 목숨을 요하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고, 이러한 정서는 미국 대외정책을 지배하면서 '베트남 신드롬'이란 말을 남겼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