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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국 탄광촌의 몰락속에서 피어나는 꿈, 영화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 한다는 딸아이의 말에 얼른 TV앞에 앉았다. 언제부터 보고싶었던 영화였는지...얼마 전부터 왠지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TV에서 방영을 해준다.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장면..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와 중년이 된 그의 형이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빌리의 무대를 보기위해 나선다. 형은 늙은 아버지를 재촉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버지의 행동은 영 굼뜨다.
 

하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극장의 좌석에 앉은 두사람은 안내인에게 빌리의 가족이 왔다고 전해달라고 하고 안내인은 빌리에게 그말을 전한다.

담담하게 그리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듯 알았다고 대답을 하는 빌리의 모습에서  더 이상 그 옛날의 철부지  꼬마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화면은 다시 관객석에 앉은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친구인 마이클에게로 옮겨 간다. 설레임과 조용한 흥분 속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콩닥 거린다.

성인이 된 빌리가 무대 뒤에서 준비를 시작하는 그 장면...단단한 어깨와 쭉 뻗은 등, 멋지게 뒤로 넘긴 머리와 강렬한 분장. 천천히 몸을 푼 그가 무대로 달려나가고 아마도 조연에 불과할 다른 발레리노들이 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시선을 기울일 때, 빌리가 아버지와 형 앞에서 한 마리 백조처럼 날아오른다.


순간적으로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건 강하고 늠름한 그의 모습이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탄광 속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아버지와 형의 지친 얼굴과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그를 보며 기뻐 눈물짓는 표정에서, 그들의 기쁨은 빌리가 이제 그들에게 돈을 벌어다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철없고 어린 꼬마였던 빌리가 마침내 한 무대의 주역으로 당당히 선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적어도 빌리가 날아오르던 그 순간 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과 마음 고생이 보답받는 감동의 순간이다. 빌리의 성공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기쁨과 축하의 감정으로. 영화에 이렇게 몰입해보기도 오랜만이다.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빈곤한 탄광촌의 몰락과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꿈 한 줄기. 서글프지만 가슴 따뜻하고, 가슴은 따뜻하지만 서글프다.


예쁜 토슈즈 사이에서 복싱화를 신고 어설프게 발레를 배우는 빌리, 눈망울이 예쁜 게이 친구 마이크의 풋풋한 사랑, 빌리에게서 가족을 떼어낸 나머지 부분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참 귀엽고 재미있다. 깡마른 소년이 발레에 빠져드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고 어떻게 재능을 보여줄까 기대도 많이 되었다. 익숙한 마을 거리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춤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흐뭇하다.

딸아이는 아버지가 돈이 없어도 희생하면서 빌리에게 왕실 발레학교에 입학시키는 장면이 제일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오늘 가슴을 울렸던 건 빌리의 가족들이 처한 상황이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 파업을 주도했던 빌리의 아버지가 빌리의 오디션 비용을 위해서 '배신자'들의 대열에 합류, 통근버스(아마도 목숨보호버스)를 둘러싼 파업 노동자들 중 아무와도 시선을 맞추지 않고 광산으로 들어간 후 빌리의 형인 토니가 쫓아들어와 아버지를 붙들고 무너질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까지 재능을 가진 어린 아들, 어린 동생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자책감은 당연한 것일까? 단지 가족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배신하면서까지 빌리를 지원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당연한 건가? 가족이란 그런 것일까? 왜, 라고 물음을 던져봤자 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아버지이고 형이니까. 생존권을 걸고 싸워야 하는 파업 노동자들의 결연함도 가족애 앞에서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고자 해도 길이 열리지 않는 부족한 이들에게는 꿈을 가진다는 것이 더욱 더 힘든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빌리의 가족들과 같은 이들에게 꿈은 곧 희망과 미래가 아니라, 더욱 힘든 일을 감수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니? "

  "모르겠어요...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마리의 날으는 새가되죠. 마치 전기에 감전되는 느낌이요..그래요..감전.."

발레의 기술이나 테크닉 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춤으로 표현해 내는 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아본 윌킨슨 선생님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제 나가서 인생이랑 모든 것을 찾을 시기란다"


기본정보

장르 드라마, 가족 | 영국 | 110 분 | 개봉 2001.02.17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제이미 벨(빌리 엘리어트), 줄리 월터스(윌킨슨 부인), 게리 루이스(아버지 재키 엘리어트)

국내 12세 관람가